기억술의 부작용과 해결책

망각하지 못해서 불행한 한 남자의 이야기

 

1920년경 어느 날, S라는 한 청년이 러시아의 신경심리학자 알렉산더 루리아의 연구실로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억력을 검사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신경심리학자가 보통 사람들의 기억력을 검사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청년의 경우에는 기억력 검사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루리아가 단어나 숫자를 길게 연속해서 불러 주면 S는 마치 어깨 너머로 루리아가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듯이 말했습니다. 70개 단어로 된 목록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외워서 말했습니다. S는 이를 기억해 내는데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루리아가 숫자를 뒤에서부터 말해 보라고 하면 숫자를 거꾸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S는 학습한 것을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뒤에도, 심지어 15년이 지난 후에도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전혀 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루리아는 S가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는 S가 장소법 등 여러 가지 기억술을 조합해서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루리아는 S가 서로 다른 감각의 함성인 공감각(Synthesia)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예를 들면 소리가 빛, 색깔, 맛, 냄새, 그리고 촉감의 경험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S에게는 무지개가 단순히 색깔의 배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감각의 홍수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 감각이 모든 경험을 기억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S의 능력에 대해 여러 사람, 특히 학생들은 그를 대단히 부러워할 것입니다. S라면 수학 공식, 영어 단어, 역사적인 사건과 그 연도, 시 구절, 또는 주기율표 등을 공부하기 위해서 몇 시간을 애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쉽게 학습될 것이고 몇 년이 지나도 마치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책을 보듯이 이것을 기억해 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S의 이야기가 그렇게 행복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의 그 비상한 능력 때문에 그에게 불행한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전화번호, 다시 만날 필요가 없는 약속 날짜와 시간 등, 이제는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까지도 전혀 망각하지 못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선천적인 기억력에 의해서든 노력으로 증진된 기억력이든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성가실 수도 있습니다.

 

기억술은 학습의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기억전문가들은 자신의 기억력을 증진하기 위해서 기억술을 개발해왔습니다. 이 모든 기억술에는 많든 적든 간에, 완벽한 심상을 구성하기, 기억할 때와 검사 시에 주의집중 하기, 또 한 가지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신의 기억력을 증진하려는 대단한 욕망이 크게 작용합니다. 기억을 증진하는, 널리 인정되는 기술이 있지만 완벽한 기억이나 기억을 발달시키는 완벽한 기술은 없을 것입니다. S만 하더라도 그의 초능력 같은 기억력은 그에게 축복이자 불행이었습니다. 기억술에는 분명히 제한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어 목록으로 바꿀 수 있는 정보를 기억하는 데에는 유용합니다. 그러나 모든 정보가 그런 형태로 쉽게 전환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방금 본 내용에 대해서 발표 준비를 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럴 때는 다른 학습전략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그냥 암기하려고 할 것입니다. 책을 볼 때 마음속으로 그냥 읽어 내려간다면 이런 수동적인 방법으로는 책 속에 있는 정보를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실을 단순히 암기해야 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 이상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그 정보를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에 되도록 많이 통합시킬수록 여러분은 새로운 정보를 더 잘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학창 시절 내내 공부를 해왔을 것이고 지금쯤은 이미 여러분 나름대로 유용한 학습전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효과적인 학습 방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방법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책, 지금 읽고 있는 이 부분을 여러분이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책의 내용을 처음 읽을 때는 가능한 한 부담 없이 읽어야 합니다. 상세한 내용을 모두 기억할 필요 없이 부담 없이 한 단위를 읽어 나가야 합니다. 그다음 다시 읽을 때는 집중하여 읽어야 합니다. 이때에는 펜이나 연필로 메모를 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기억을 하고자 할 때는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책을 덮고 읽은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말로 말해 봐야 합니다. 만일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면 다시 책을 읽어보고 나서 다시 보지 않으면서 여러분 자신의 말로 해봐야 합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하려면 읽은 내용을 충분히 오랫동안 생각하고 여러분의 말로 요약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기억을 잘하기 위한 처방전

 

학습을 다 했다 싶어도 조금 더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학습했느냐의 정도와 망각률 간에는 깊은 반대 관계가 있습니다. 덜 망각하려면 학습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영어 단어 목록을 간신히 다 외웠다고 생각되면 빨리 공부에서 해방되고 싶어 책을 덮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 외웠다고 생각되더라도 계속해서 조금 더 익히면 좋은 기억법이 됩니다. 브리핑을 잘하려면, 자신이 생각하기에 만족스럽게 할 수 있게 된 다음에도 연습을 계속해야 합니다. 연주회에서 소나타를 멋지게 치려면 실수 없이 칠 수 있게 된 다음에도 조금 더 연습하면 됩니다. 계속 연습을 거듭하면서 향상되는 양은 점점 더 적어집니다. 이 점도 유념하고 있어야 합니다.